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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교수. 심리학과] 몇 년 전 크게 인기를 끈 TV 드라마 `미생`. 웹툰을 각색해 제작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 드라마는 수많은 명대사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극중 주요 인물들이 모두 직장인들이고 따라서 업무와 조직생활에 참으로 공감 가는 대목들이 많았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런데 심리학자, 그것도 생각의 작동방식을 연구하는 인지심리학자들이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적으로 일관되게 관찰하고 있는 중요한 내용을 적시하고 있는 대사가 있다. 극 중에서 주인공인 장그래가 어린 시절 바둑기사로 활동할 때 그의 스승이 들려주는 말이다. 대국 막판에 자주 무너지는 장그래에게 스승이 이렇게 강조한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데미지를 입은 후에 회복이 더딘 이유, 실수한 후 복구가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야. 체력이 약하면, 빨리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그리고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 따위는 상관없는 지경에 이르지. 이기고 싶다면, 네 고민을 충분히 견뎌줄 몸을 먼저 만들어.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 거의 모든 심리학자들은 아마도 이 말에 크게 공감할 것이다. 정확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체력이 떨어진 사람은 정신적인 일에서도 마찬가지의 저하를 그만큼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나 많은 정신력을 소모하는 `결정`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전 칼럼들에서도 수차례 언급했듯이 결정은 가장 많은 정신적 에너지를 소모하는 정신적 작업이다. 그래서 체력이 떨어진 시점에는 결정이 잘 내려지지 않고, 혹은 최악의 결정이 나오기도 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조너선 레바브 교수 연구진이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판사들의 가석방 심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체력이 온전한 이른 오전의 가석방 비율이 65%로 가장 높았다. 체력이 떨어지는 시점인 오전 11시~낮 12시(점심 식사 직전) 구간에는 15~20%로 비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게다가 휴식 직전에는 거의 0%에 가까운 가석방 심사 결과가 나왔다. 가석방을 시키는 것이 결정이고, 불가는 결국 기본값 혹은 초기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니 체력이 떨어진 사람은 육체만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도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결정하게 만드는 것을 포함해 설득을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 상대방의 체력적인 상태부터 확인하라고 꼭 당부한다. (하략) 2019년 6월 13일 매일경제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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