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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명우, 사회학과 교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의 공간 이동을 표현하는 단어는 많다. 정복, 추방, 망명, 납치, 출장, 여행 등 인간이 상상해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공간 이동이 한 사람의 인생 궤적에 새겨져 있는 사례가 있다. 이슬람교도로 태어난 그의 이름은 알하산 알와잔이었는데, 후에 기독교로 개종하며 유한나 알아사드로 개명했다. 그는 유럽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최초로 아프리카에 관한 책을 써서 아프리카를 알린 아프리카 사람 레오 아프리카누스이며, 기독교인의 관점에서는 위장한 이슬람교도인지 의심스러운 유한나 알아사드, 이슬람교도에게는 기독교에 오염되었을지도 모르는 알하산 알와잔이다.1486년에서 1488년 사이에 현재의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람은 1492년 에스파냐의 기독교 지역 재정복운동으로 이슬람 그라나다가 위기에 처하자 지중해 건너 현재 모로코의 페스(Fez)로 이주했고, 1518년 카이로에 술탄의 외교관으로 파견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페인 해적선에 나포되어 로마의 교황 레오 10세에게 보내지고,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에서 1520년 기독교 세례를 받았다. 1526년 아프리카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이자 여행기인 를 완성하여, 그는 기독교 지역에서 학자로서의 명성을 얻었으나, 1527년 암중모색하던 귀향길에 올라 북아프리카에서 무슬림으로 삶을 살았다. 북아프리카로 돌아간 후 그의 행적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 남자가 살았던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는 정치적, 종교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다. 콘스탄티누스가 세운 로마제국의 새로운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이슬람 세력에 함락되었다. 1492년 기독교 세력은 그라나다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되찾았다. 유럽의 동쪽에서 이슬람이 승리하고, 서쪽에서 기독교가 승리하는 동안 각 진영의 내부에서는 하위분열이 일어나 루터는 가톨릭에 반기를 들었고 오스만튀르크는 페르시아의 시아파와 시리아와 이집트의 수니파 군주를 정복했다. 양 진영이 이렇게 패를 갈라 죽을 듯이 싸우고, 다시 각각의 패가 또 다른 패로 나뉘어 싸우던 기간에 이슬람 지역과 기독교 지역을 오가야 했던 이 남자는 자신을 양서조(兩棲鳥)의 처지에 빗대었고 양서조처럼 살겠다고 했다. (하략)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7150300065&code=9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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