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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흔 히 21세기를 환경의 시대라고 한다. 지구온난화, 오존층 붕괴, 환경 호르몬 등 한 때 생소하였던 용어들이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 만큼 환경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하나뿐인 지구가 온전히 보존되어야한다는 절박한 사정을 반영한다. 그렇다고 지난 수 천년 동안 지속되어온 인류 문명의 방향을 거꾸로 돌릴 수도 없다. 경제성장률이 조금만 떨어져도 온 나라가 못 살게 되었다고 아우성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성장도 필요하고 환경도 버릴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환경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로운 원칙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돌아보아야할 때이다. <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지 구의 환경을 보전하고 인류 문명을 지속적으로 보장해 줄 수 있는 범지구적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칙이다. 이 원칙의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한 것은 '환경 및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WCED)의 브룬트란트 보고서이다. 여기서 지속가능한 발전은 "미래세대가 필요한 것들을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원칙이 뜻하는 바를 새겨보는 것이 환경에 대한 인식의 출발이라고 생각된다. <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 <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bold=""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 ;font-weight:="">인간의 활동은 자연의 수용능력 안에서<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 <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 <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원칙은 유한성, 효율성, 형평성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유한성은 자연환경이 인류와 그들의 행위를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이 유한하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우주 삼라만상의 운동에는 에너지가 필요한 것처럼 인간의 모든 활동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자연환경이 우리 인류에게 제공할 수 있는 에너지는 제한되어있다. 이것이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1법칙이다. 그래서 지구가 인간의 활동을 수용하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한계가 없으면 발전은 기하급수 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을 때에는 어느 점에서가 증가 곡선의 기울기가 변하는 변곡점이 있어야하고 그 점 이 후 부터는 증가 속도가 떨어지면서 <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 italic="" ;font-style:="">S <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곡 선을 그리며 서서히 한계점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열역학적 사고의 기본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의 이념은 바로 이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활동은 이 수용능력의 범위 안에서 이루질 수밖에 없다. 환경의 수용능력이 생산의 근원적 한계이며 경제성장의 근원적 한계를 설정한다는 인식이 절실하다. <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효 율성은 귀중한 자원을 이용하는 인간 행위가 포괄적으로 보다 경제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에너지는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형태의 다른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 이 때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으나 에너지의 유효성은 크게 변한다. 석유를 태우면 석유에 저장되어있는 에너지 량만큼의 열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한번 타버린 석유는 다시는 석유 돌아 갈 수가 없다. 그래서 타고난 후 생긴 열 에너지보다는 석유의 이용가치가 훨씬 더 크다. 이처럼 지구상의 에너지의 양은 일정하더라도 에너지가 변환될 때마다 지구의 총에너지의 이용가치는 감소한다. 그래서 에너지를 변환할 때 총에너지의 유효성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변환하여야하며 이때에 에너지 변환 효율이 가장 높다. 이것이 열역학 제2법칙이다. 자연환경도 마찬가지이다. 개발은 환경의 희생을 요구한다. 개발을 이유로 한번 파괴된 환경은 개발이 주는 이익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을 치러야 회복될 수 있다. 어쩌면 회복이 불가능할 수 도 있다. 귀한 것일수록 아끼고 조심스럽게 다루는 것이 동서고금의 지혜이다. 선진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이미 소모된 자연자원과 배출된 환경오염물질만으로도 지구의 환경문제가 심각해졌다. 경제의 적정 성장과 동시에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자연자원의 이용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인간의 욕망, 인류의 소비 수준과 양식이 통제되어야한다. 결국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은 환경을 포함한 경제적인 사고의 틀이 마련되어야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 <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bold=""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 ;font-weight:="">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으로<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 <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 <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형 평성의 문제는 환경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큰 과제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열은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흐른다. 이처럼 자연의 모든 운동은 차이를 없애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지구상에서는 평형을 찾아서 끊임없이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더위와 추위가 닥친다. 그러나 자연과 달리, 인류 문명은 자연을 거슬러 끊임없이 더 큰 비평형 과정을 양산해왔다. 자연은 점 점 더 비 자연적으로 조작되고 인류의 삶은 자연으로부터 점 점 더 멀어져 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 인간의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개입하여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이 확산되어왔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은 다시 자연환경의 훼손을 가속화 시켰다. 선진국은 더 많은 부를 얻기 위해서 후진국의 자원과 에너지를 헐값에 이용하였다. 대도시의 쾌적한 생활을 위해서 시골의 자연은 자원 공급 기지로 희생되어야했다. 결국은 잘 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 도시와 시골의 비대칭적 발전은 자원의 고갈과 환경오염을 가속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은 환경문제의 밑바닥에 있는 불평등의 문제, 특히 경제적, 사회적, 교육적 불평등의 문제를 해소하여야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P style="FONT-SIZE: 12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굴림; TEXT-ALIGN: justify"><SPAN style="FONT-SIZE: 12pt" #000000="" 굴림="" ;font-size:12.000pt;color:="" ;line-height:25.600px;letter-spacing:0.000px;text-align:justify;\\="">결 국 환경의 문제는 지구 공동체의 삶의 문제이다. 공동체의 삶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생물체가 살아가려면 여러 가지 영양소가 필요하다. 결핍된 것이 있으면 그것이 생물의 성장을 제한한다. 특히 가장 결핍된 영양소가 생물의 생산을 지배한다. 이것을 생물학에서 ‘최소량의 법칙’이라고 한다. 공동체의 삶도 그러하다. 아무리 크고 훌륭한 문명을 가졌더라고 작지만 필수적인 요소가 부족하면 그 공동체는 더 이상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래서 건강한 공동체가 되려면 부족한 부분, 약한 부분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흔히 21세기를 무한경쟁의 시대라고 한다. 이런 경쟁의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사익과 공익은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낙관적인 사고가 들어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환경에 관한한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은 너무 느리다. 사익추구로 말미암아 환경은 눈에 뜨게 파괴되었다. 환경의 훼손으로 심지어 공동체의 생존이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발전의 이념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에 앞서 우선 공동체의 이익을 먼저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 선조들이 귀하게 여겼던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은 지구공동체를 지켜야하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가치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환경과 자연자원은 우리의 미래 공동체로부터 빌린 것이다. 우리의 후세들에게 건강한 미래 공동체를 남기려면 나의 욕망을 절제하여 우리가 빌려 쓰고 있는 환경과 자연자원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이 마땅하다. <P style="FONT-SIZE: 10pt; MARGIN: 0px; COLOR: black; TEXT-INDENT: 0px; LINE-HEIGHT: 160%; FONT-FAMILY: 한컴바탕; TEXT-ALIGN: justi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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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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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2pt">ICM(International Congress of Mathematicians)은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수학자들의 학회로 100년이 조금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2002년에는 북경에서 열리고 올해에는 스페인, 그리고 다음에는 인도에서 열릴 예정이다. 올해열린 ICM은 8월 22일부터 30일까지 마드리드에서 열렸는데, 수학은 물론이고 오래전 스페인 출신 친구와 함께 먹어서 좋아하게 된 빠에야(스페인 쌀요리)와 하몽(돼지다리 생으로 말린 것)을 기다리며, 그리고 그 유명하다는 프라도 미술관을 기대하며 18시간 걸리는 비행기를 탔다. 무엇보다도 ICM의 가장 큰 행사는 필즈메달 시상식이다. 필즈상은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하는데, 매번 2~4명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아니 4년에 한번이니 노벨상보다 더 귀한 것일 것이다. 뛰어난 논문 한 편에 대해 주는 것이 아니라 수상자의 수학적인 전체 업적에 대해 주는 상이다. 이번에는 스페인 국왕이 나와서 직접 수여하였는데 4명이 공동수상하게 되었다. 기하학의 Perelman(Russia), 해석학의 Tao(Australia), Okounkov(Russia), 그리고 확률론의 Werner(France) 4명이다. <SPAN style="FONT-SIZE: 12pt">올 해는 처음으로 확률론 분야에서 필즈상을 받아서 21세기 수학의 방향을 말해 주기도 하였다. 올해의 수상자들 가운데 우선 두 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수상자 Perelman이 푼 문제는 프앙카레(Poincare, 1854-1912) 추측으로 거의 100여년 간 풀리지 않은 문제이다. 21세기가 시작할 때 미국 클레이 연구소(Clay Institute)에서 밀레니엄문제(Millenium Problems)로 내 놓은 7개 문제 중 하나이다(이 문제들을 풀면 각 문제마다 100만불의 상금을 내 걸었다). 문제를 쉽게 이야기해 보면, 3차원 밀폐된 공간에서 모든 밀폐된 곡선이 수축되어 하나의 점이 될 수 있다면, 이 공간은 원구로 변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분야의 수학자들이 오랫동안 풀려는 욕심이 있었던 문제이다. 위상수학의 문제이나 위상수학보다는 기하, 혹은 편미방 등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야 풀릴 것이라고 생각해 왔었으며, 해결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 문제였다. 약 3년 전에 Perelman은 그의 증명을 인터넷에 올렸는데, 그때까지 많은 수학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주장했으나 틀린 적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수학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젊었을 때부터 상당히 존경받는 수학자였고, 그동안 커다란 오류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논문을 캐내기 시작하였다. <SPAN style="FONT-SIZE: 12pt">이 번 학회에서 그의 결과를 설명한 Hamilton 교수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거의 100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을 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으면 시작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피해가기에는 너무 흥미로운 문제”였다고 말했다. Perelman의 결과를 이용한 논문이 2편이나 나와 있어 이제 거의 대부분의 수학자들은 그의 결과가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밀레니엄 문제 중 처음으로 풀리는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다.그렇게 영예가 되는 상인데도 Perelman은 수상하기를 거절하고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논문을 인터넷에 올린 후에 미국의 대학에서 그를 초청하여, 프린스턴 대학 등 여러 대학을 돌아다니며 본인의 결과를 설명하였다. 그는 그의 결과가 미국 Hamilton 교수의 Ricci흐름에 관한 결과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항상 말했으며 Hamilton 교수를 “나의 선생님”이라고 하며 그에게 많은 영예를 돌렸다. 그는 1966년생으로 올해가 Fields Medal을 받을 수 있는 연령자격(40세 이하)으로 마지막 해이었다. 상당히 조용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세상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그런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러시아로 돌아간 후에 그가 속해있던 소련의 저명한 연구소 Steklov Institute를 사직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는 동료들에게 여유가 있으면 집 근처 숲속에서 버섯을 캐면서 지낸다고 했으니, 요즈음도 버섯을 따러 숲을 다니며 또 하나의 밀레니엄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은 아닐까? Clay Institute에서 주게 될 100만불 상을 그가 받을 것인가? <SPAN style="FONT-SIZE: 12pt">Terry Tao는 중국계 오스트레일리아 인으로 지금은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at Los Angeles(UCLA) 교수이다. 그는 현재 31살인데 그의 부인이 한국인 2세로 알려져 있다. 그의 홈피는 수학의 여러 분야를 연결하는 역할로 이미 수학자들 사이에서 자주 찾아가는 사이트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풀어 낸 문제도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한 문제였다. 즉 “소수(prime numbers)들의 집합 속에 100만이나 1000만개 길이, 즉 임의로 긴 등차수열이 존재 하는가?”라는 문제이다. 소수들이 커질수록 얼마나 드문드문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 문제의 어려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다”라고 증명을 하였다. 이 문제는 소수들의 집합에 관한 문제이나, 해결하는 방법은 소수들과는 아주 거리가 먼 확률공간에서 일어나는 성질들을 이용하였다. 그는 문제들을 꿰뚫어 보는 능력의 소유자이다. 물론 이런 능력은 그의 말대로 오랫동안 생각해보고 그리고 수학을 ‘만들어’ 보는 것에서 나왔을 것이다. <SPAN style="FONT-SIZE: 12pt">그의 강연 제목은 “structured vs psuedo-randomn”로 증명에 필요한 성질을 이끌어 내기 위한 그의 관점을 소개하였는데, 나와 가까운 분야여서 강연을 훨씬 더 즐길 수 있었다. 여러 분야를 섭렵한 그의 지식이 빛나는 강연이었다. 그의 수학적 관심 중 하나는 구조를 가진 것과 무작위인 것(structured vs random)과의 차이를 밝혀내는 수학적 방법을 찾아내는데 있다고 하면서, 많은 어려운 문제의 경우 다른 분야에서 아이디어와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수학이 좀 더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하고 싶다고도 하였다. <SPAN style="FONT-SIZE: 12pt">곧 2학기가 시작인지라 너무 피곤할까봐 걱정이 되어 망설이며 마드리드로 떠났는데, 강연들을 들으며, 그리고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온 수학자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나서 안부를 들으며, 수학을 이야기하며 즐거웠다. 그리고 이제 막 국제무대에서 날기 시작한 한국 수학의 발전을 위하여 “한국 수학인의 밤”을 마련하였는데, 많은 외국 수학자들이 참석하여 성황리에 진행된 것도 참석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한국에서도 이러한 학회가 곧 개최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나는 언젠가 우리 학교 졸업생 중 누군가가 이러한 상을 받게 되면, 혹은 100만불의 상금을 받게 되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다시 꼭 참석하리라고 생각하며, 그리고 이번 학기 가르칠 과목들을 다시 한 번 구상해 보며 29일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SPAN style="FONT-SIZE: 12pt">자연과학부 수학전공 고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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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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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FONT-SIZE: 12pt">최근 도시설계 방식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내고자 사업주체가 도시설계안을 국제적으로 공모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일반적으로 설계공모는 우수한 품질의 설계안과 성공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건축가나 전문가를 찾는 게 목적이다. 그동안 건축물, 조형물, 도시구조물 일부 등에 국한되었던 공모 대상이 ‘도시’라는 커다란 규모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SPAN style="FONT-SIZE: 12pt">우리나라의 경우 행정중심 복합도시(행정도시)가 도시설계 공모의 그 대표적 사례다.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청, 한국토지공사, 대한주택공사 등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고 있는데, 토지공사는 도시·건축·조경·토목구조물 등 도시건설 전체 부문에 걸쳐 순차적으로 국내외 설계공모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전체 20여 커뮤니티(마을)를 구성한 뒤 커뮤니티마다 하나씩 입체적 마스터플랜을 공모하고 이를 토대로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도시개념 국제공모를 시행하여 이중순환도로라는 도시구조를 도출하였고, 최근에는 국가·도시적 상징이 될 중심행정타운을 조성하고자 도시설계 마스터플랜을 공모한 것인데, 국제적인 건축·도시계획·조경 등 관련 분야 전문가와 일반인의 관심이 대단한 것 같다. <SPAN style="FONT-SIZE: 12pt">특히, 이번 설계공모 진행방식에 따라 많은 청년 건축가와 새로운 젊은 도시설계가들의 등장이 기대된다. 국제 설계공모를 통해 등장했던 좋은 프로젝트가 하나의 브랜드를 넘어 국가적 상징이 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요른 우트손이 설계한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영국 런던 시청사도 그렇다. 가우디가 설계한 스페인의 성파밀리아 성당만 해도, 그 건축물 하나를 보기 위해 한 해에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바르셀로나를 방문한다고 하니 문화상품을 넘어 한 나라 문화의 품격을 대변해준다. <SPAN style="FONT-SIZE: 12pt">과거와는 달리 한국의 새로운 도시는 도시공간에 삼차원적인 상상력을 담고자 활발한 시도를 하고 있다. 종래에 토지를 이차원적으로 먼저 구획하고 난 뒤 건축계획을 수립함으로써 단조로운 도시가 되는 불합리한 방식을 바꿔, 설계공모를 통해 원형지 상태에서 토지이용 계획과 건축계획을 입체적으로 검토·수립하는 원형지 개발방식을 도입한다고 하니 도시건축 분야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될 전망이다. 미국 뉴욕 센트럴 파크 이상의 공원을 목표로 하는 도시 중앙부 오픈스페이스 설계공모, 대규모 장대교량 디자인 공모 등도 주목해볼 만하다. 또한 우수 주택업체를 대상으로 설계안과 시공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사업공모 역시 도입한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한국의 도시 이미지를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구심점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SPAN style="FONT-SIZE: 12pt">현상설계 공모와 관련해 또 하나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세계적인 영국 건축가 테리 파렐은 행정도시 현상 설계공모 심사발표 후 내게 “왜 한국에서는 공모 선정 발표 때 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주인공인 건축가는 보이지 않고 심사자, 관료, 발주자만 보이느냐”고 물었다. 도시와 건축물을 실제로 설계하고 창조한 건축가는 간데없고, 이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관리하고 심사한 사람들이 주인공인 것처럼 비치어서 이상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행정도시 설계공모가 스타를 배출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도시·건축 디자인 분야에 새로운 혁신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한겨레 9월 7일자 기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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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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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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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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