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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 트롬페나스(Trompenaars)라는 학자가 있다. 그는 국제경영을 가르치면서 다국적 기업의 관리자들을 초치해서 교육을 시키고 있다. 마침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각 나라 사람들의 의식을 조사해서 교육에 반영한다. 말하자면, 이런 것을 물어본다. "친한 친구가 차를 몰고 가다 사람을 치었는데 증인이 당신 밖에 없다. 당신이 과속 사실을 숨겨주면 친구는 가벼운 처벌만 받고 끝난다. 그런데 당신이 사실 대로 이야기한다면 친구는 큰 벌을 받게 된다. 이 때 당신은 사실대로 이야기하겠는가? 친구니까 과속 사실을 숨겨주겠는가?" 아무리 친구라고 하더라도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비율이 캐나다 사람들은 96%에 이르렀고 미국, 영국, 서독이 90%를 넘었다. 프랑스, 일본, 싱가포르 등은 60%대였고, 중국, 인도네시아, 러시아가 40%대를 기록했다. 한국은 얼마였을까? 26%로 뚝 떨어진다. 38개 조사대상 국가 중 38위. 트롬페나스는 93년 이 자료를 처음 발표하고 나중에 업데이트를 해 나갔지만 한국의 위상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위증을 해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어떻게 친한 친구 일인데 사실 대로 이야기한단 말인가?"하는 것이 우리네 한국인의 정서가 아닌가 싶다. 트롬페나스의 조사는 결코 특별히 이상한 조사가 아닌 것 같다. 필자가 기업체 연수원에서, 공무원 대상 교육에서 수차례 확인하였지만 결과는 유사하였다. 서구식 교육을 받고 있는 대학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은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인간관계에서도 정(情)이 중요한 \\'정(情)의 사회\\'다. 규칙과 약속도 중요하지만, 정을 위해서는 이 규칙과 약속을 과감히 왜곡하고, 적절히 변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규칙대로 하거나 원칙을 너무 강조하면 살아가기 힘들다. \\'고지식한 사람\\', \\'인정이 없는 사람\\'으로 통하기 쉽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법이나 원칙을 무시하고 사는 것이 물론 미덕은 아니다. 법과 원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적절히 \\'현실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생활의 노하우다. 한국인의 이런 정적인 요소가 우리를 이렇게 성장시킨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뜻이 맞고 서로 통하기만 하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야근도 불사하고, 주말도 반납하며, 공기를 단축시키고, 해외 오지시장을 개척한다. 기술이 없어도 모방을 하고, 자원이 없어도 몸으로 때운다. 모두가 못 살 때는 이러한 \\'정의 문화\\'가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도 리더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규칙보다는 인간관계를 앞세우고, 법보다는 정을 우위에 둘 수 있겠는가. 국제투명기구에서 매년 국가 부패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한국은 2010년 38위를 기록했으나, 줄곧 40위권이었다. 주요국을 대상으로 한 뇌물공여지수도 한국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런 오명을 언제까지 안고 가야하는가. 권력도 지위도 없는 일반인에게 \\'정의 문화\\'는 따뜻한 생활의 활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회지도층에 있다는 사람들이 정실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연고에 의해 인사가 이루어지고, 정실에 의해 국가 자원이 배분되어서야 되겠는가. 회사의 내부 정보를 이용하여 몇몇 사람이 증시에서 이득을 보고, 회계조작으로 오너가 사익을 챙겨가고, 전관예우에 의해 사법부가 제대로 판결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실주의가 조직에 팽배하면 직장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는 어디에 줄을 대야 하느냐를 가지고 고민하게 된다. 대학생들은 이제 중간고사 기간이다. "친구니까 도와주지" "이번 한번이면 어떨까" 하는 사이 사회는 멍들고, 선진국은 멀어져 가는 것이다. [경인일보 - 20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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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어휘는 특정의 맥락 속에 들어가 있을 때, 그 의미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민주주의라는 어휘 역시 그렇다. 그런데 민주주의라는 어휘가 정치적인 내용을 지니고 있는 만큼, 이 어휘의 정의는 보편적 해석이나 이해와는 관계없이 해석 주체(권력자들)들이 의도한 정치적 목적을 치장하기 위해 재구성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이 어휘를 사용하는 논쟁에서는 그 맥락을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는 추구해야 할 비전으로 받아들여졌지만, 현실에서는 집권자의 ‘사적 이해관계’에 근거해 재구성됐다. 신생국에서 권력을 장악한 실권자들은 장기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특수 민주주의 논리를 개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1960년에 파키스탄에서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아유브 칸이 제안했던 ‘기본 민주주의’는 그런 사례의 하나였다. ‘기본 민주주의’는 일시적으로 아유브 칸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으나, 국민을 무시하고 참정권을 제한하려 한 시도는 결국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여 실패했다. 신생국 인도네시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 역시 ‘교도 민주주의’라는 독특한 논리를 개발하였으나 사실상 개인 독재를 강화하는 데 이용돼 실패로 끝났다. 북한이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특정 인물이나 공산당의 독재를 ‘인민 민주주의’로 분식한 것 역시 공산당이나 개인의 권력독점을 노린 허위논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특수형태의 민주주의는 우리의 현대사 속에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형식으로 남아 있다. 국민과 정치적 반대세력을 오직 ‘계몽과 지배’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집권세력의 가치만을 절대화한 이런 논리들은 결국 집권세력 내부의 분열과 국민의 저항에 직면해 대부분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이해에서 중요한 것은 현란한 수사학에 감춰진 진실의 맥락, 즉 ‘현실의 실천’을 보는 것이다. 최근 국회 교과위 국정감사장에서는 한 여당의원의 “자유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북한에 가서 국회의원을 하라.”는 발언을 둘러싸고 대립이 발생했다. 이 사태는 본인이 해명하고 진의를 밝혔으니 곧 진정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걱정스럽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발언자는 이 발언의 진의가 “민주주의를 자유 민주주의로 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대표가 있다면 사임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고 해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해명은 원래의 논리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원래의 발언이 갖는 문제점, 즉 ‘자유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맥락과 그것을 강제하는 의도’에 대한 비판 의견을 바로 북한 지지자와 동일시하는 ‘논리의 비약’을 그대로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헌법의 정신이나 한국 현대사의 전개에 비추어볼 때, ‘자유-민주주의’는 우리가 지켜 온 매우 소중한 유산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특정의 맥락 속에서 사용될 때, 그것은 오히려 자유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헌정질서의 파괴를 정당화하려 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도를 숨기기 위해 사용하는 ‘수사학적 매개물’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를, 자신이 정한 논리 속의 ‘자유 민주주의자’라고 규정하고(자유 민주주의적 가치의 ‘실천’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모두 ‘북한의 추종자’라고 규정하여 배제하기 위한 논리로 그것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맥락’과 ‘실천’에 대한 성찰을 배제한 채 흑백논리적 대결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자유 민주주의가 반드시 지켜나가야 할 절차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된다.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는 자신이 규정한 논리 속에서가 아니라 구체적 삶의 실천에서 지켜지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일은 우리가 이미 경험해 왔듯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치권과 관련학계가 그러한 논란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유 민주주의적 가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냄으로써 무익한 갈등국면을 하루빨리 종식시키길 바랄 뿐이다. [서울신문 - 201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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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배안나
- 작성일201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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